삶은 살살 52

[아이를 키우며] 꿈나라 학원이 있나요?

우리집에는 28개월 아이가 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놀라움의 연속인데, 가장 큰 놀라움은 육아가 이렇게 힘들다는 것에 대해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 알려줬었는데 내가 귀기울여 듣지 않았던건가. 혹시 이 글을 보는 예비 아빠엄마가 있다면 귀담아 들으시길. 육아는 힘듭니다. 무척요. 또 다른 놀라움은 아이는 무척이나 빨리 자란다는 것이다. 꿈나라에서 학원이라도 다녀 오는 건지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말을 하고 어제는 분명 오르지 못했던 곳을 혼자 힘으로 오른다. 이런 아이의 폭풍 성장을 보는 일은 무척이나 기쁘지만 동시에 아쉽기도 하다.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든 해보려다가 엉뚱한 표현을 한다던가 그리 높지 않은 의자에 오르기 위해 낑낑대다가 결국 내려와 부모에게 팔을 벌리는 귀여운 모..

삶은 살살 2021.08.17

[가게에서] 어르신의 서명

카운터에서 계산을 받다 보면 서명도 참 여러가지구나 싶다. 특이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서명은 하트그리기다. '하트', 그럴 때면 나는 속으로 식사가 영 형편없진 않았나보다 안심한다. 맛없는 식사를 하고 하트를 남기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웃는 이모티콘을 그리거나 '네'라고 대답하듯 서명을 남기는 예의바른(?) 손님들도 계시다. 나도 목소리를 높여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하게 된다. 어느 분은 작대기 하나만 쓱하고 그린다. 그런 손님은 여지없이 영수증도 필요없다 하시고 홀연히 사라지신다. 때로는 서명의 내용이 아니라 서명하는 자세나 태도가 남다른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카운터 쪽으로 걸어오는 어르신은 족히 아흔은 돼 보이셨다. 이 나이대의 손님이 계산을 하는 일은 드물기에 어르신..

삶은 살살 2021.06.12

[아내가 임신했다] 8주차 - 입덧의 덫

먹덧으로 시작할 것처럼 보였던 아내의 입덧은 8주차에 접어 들면서 입덧 다운(?) 입덧으로 바뀌고 있다.울렁거리는 속을 참아내며 애써 먹을 수 있는 만큼은 먹으려는 아내의 모습이 안쓰럽다.그렇게 힘들게 먹은 음식을 이내 토해낼 때는 더욱 그렇고-그저 지켜보는 것, 가만히 등을 쓸어주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것도 마음 아픈 일이다. 한 번씩 구토를 하게 되니 밥 먹는 게 무서워지기도 하고. 그래도 어쩌겠나.먹는 순간만이라도 맛있게 먹었으면 하는 마음이다.케첩만 넣고 해도 될 소세지야채볶음에 난생 처음 데미그라스 소스까지 만들어가며(백종원 쉪, 감사합니다) 유난을 떠는 건 그런 바람 때문. - 며칠새 출퇴근길에 (저 유명한) 을 읽어 냈다.모리 교수님은 말했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하리"라고.아무리 ..

삶은 살살 2018.10.06

[아내가 임신했다] 어리둥절한 6주차

결혼 6년차, 아내가 임신을 했다.무던히 가지려고 애를 썼던 적이 있었고 문턱에서 아픔을 겪기도 했고 인공의 힘을 빌리기도 했다.별소용은 없었지만 '아이는 하늘이 내려준다'라는 말을 어렴풋이 깨닫는 과정이었다.그리고 아내의 임신 소식. 하늘이 별안간 마음을 썼나보다. 6주차에서 7주차로 넘어가는 중.아내는 잠이 많아졌고 울렁거림이 심해 아무것도 먹고 싶어하지 않지만 꾸역꾸역 먹을 수 있는만큼은 삼키고 있다.말 그대로 손톱 크기일 아이는 아내의 몸 속에서 제 몸의 반이나 되는 심장을 끌어안고 온몸으로 세차게 두근대고 있다.아직 어리둥절한 나는 힘닿는대로 집안일을 하고 요리를 하고 책을 보고 셋의 앞날을 생각해본다. 아내의 울렁거림이 심하고 가슴에서는 통증을 느낀다. 의사 선생님은 그게 임신 초기의 자연스런..

삶은 살살 2018.09.24

The end of the road

태양의 나이가 50억년쯤 남았다고 한다. 낮에는 똑바로 쳐다보기도 힘든 이 찬란한 행성은 소멸 과정도 꽤나 호들갑이셔서- 주변에 행성들을 집어삼킨다고 하고, 불행하게도(아마?) 지구도 그 목록에 포함돼 있다고 한다. 지구가 과연 멸망할까라는 오래된 물음에 한 가지 답은 나온 셈이다. 물론 인류가 멸망할 이유를 묻는다면 다시 고민해봐야겠지만-

삶은 살살 2018.09.01

씌나몬 근저당권 말소기

1천400조원, 현재 대한민국 가계부채 전체 규모입니다. 우리나라 한 해 예산이 400조니까 우리나라의 가정이 모두 빚을 갚으면 그 돈으로 3년 정도는 나라를 꾸려갈 수 있는거죠. 그리고 2016년 국내총생산GDP이 약 1,589조 정도라고 하니 비유하자면 우리는 1년 정도를 가불해 살고 있는 셈입니다.(계산이 틀렸다면 문과인 저를 탓하세요..) 어쨌든 저 또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부채, '가계부채'를 만드는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부채는 이렇게 큰데 가슴 속이 시원하기는 커녕 답답한 건 왜일까요. 헛소리는 이쯤하고 본론으로 넘어갈게요. 대출을 받게 되면 '근저당권'이라는 걸 설정하게 됩니다.(그렇대요. 저도 돈 갚으면서 제대로 알았어요.) 근저당권을 쉽게 말하면 A(주로 은행이나 보험사)한..

삶은 살살 2017.10.22

<며느라기> @멀티플렉스 추석

추석 연휴를 바로 앞둔 날 전세 계약을 마무리하러 아내와 부동산을 찾았습니다. 중개사분께 반갑게 인사를 드리는데 표정이 안 좋으시더군요. 붉은 눈시울에 한 손엔 휴지를 들고 계신 모습이 방금까지 울고 계셨던 거 같더라고요. 매번 뵐 때마다 밝고 활기찬 분이었기에 살짝 놀란 마음이 생기며 무슨 일이 있으신가 자연스레 걱정이 됐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금 나누다 혹시 무슨 일 있으신건지 여쭤보니 중개사분께서 조심스레 하소연을 하시더라고요. 그 사연은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긴 스트레스였습니다. 시어머니가 아들만 셋인데 다른 아들네 며느리들은 바쁘다며 음식 준비를 하지 않아서 그동안 혼자서 해오셨다고 합니다. 그게 억울하지만 마음이 약해서 누구한테도 말 못하고 속만 썩이고 계신 거였죠. 제 아내는..

삶은 살살 2017.10.19

알맞은 힘으로 알맞게 일하기

4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고양이가 동거 중인 저희 집. 저는 꽤나 아침형 인간인 탓에 가장 이른 아침을 맞이하는 편입니다.서재로 가 책을 보거나 인터넷을 하기도 하고 이렇게 글을 쓰기도 합니다. 그리고 배경으로 스포츠 채널을 낮은 볼륨으로 틀어놓는 걸 좋아합니다. 치열한 승부의 현장을 고요히 보며 몽롱한 정신을 조심스레 깨우는 의식이랄까요? 요즘은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포스트시즌 경기가 한창입니다. 야구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고 딱히 응원하는 팀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투수가 공을 던지는 투구 동작은 유심히 보는 편입니다. 지름 7cm 가량의 작은 공을 조금이라도 위력적으로 던지기 위해 한껏 몸을 구부렸다 일순간에 펼쳐내며 타자를 향해 공을 뿌리는, 일련의 투구 동작에는 가슴을 뛰게 하는 무언..

삶은 살살 2017.10.14

야쿠시마 숲 이야기

새벽에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일본 야쿠시마의 숲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SBS 다큐멘터리 '숲에서 길을 묻다' 편)제주도 3분의 1 정도 되는 섬인 야쿠시마는 원시림을 보존하고 있는 자연유산입니다. 야쿠시마 숲은 수천년을 세월을 버티어온 삼나무로 유명한데요. 이렇게 큰 숲을 유지시키는 힘은 바로 '비'와 '이끼'입니다. 얼마나 많은 비가 오냐면 '야쿠시마에는 1년 366일 비가 온다'는 말이 있다네요. 그렇게 내린 비 덕분에 이끼가 무성히 자라고. 이끼가 머금고 있는 수분이 나무의 성장을 돕는거죠. 벼락을 맞아 죽은 나무를 이끼가 뒤덮고 그 이끼 위로 새로운 나무가 자라는, 숲의 초록빛 신비에 경외감이 느껴졌습니다. 이 곳도 그 모습을 잃을 뻔하기도 했는데요. 500년 전부터 조금씩 시작된 벌목이 태평양..

삶은 살살 2017.10.02

겸손한 항해

인생은 긴 항해라는데 나이를 먹어갈수록 변변한 보물상자 하나 찾지 못한 채떠나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라 자꾸 조급해집니다. 배에 딸려 온 해조류라도 손에 쥐고 '이것 좀 봐달라'고 애원해야할 것 같은 기분이 자주 듭니다.별거 아닌 걸로 자랑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만큼 초라한 일이 있을까요.그래서 겸손해져야겠다 자주 생각합니다. 혹은 분수를 알아야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내 항해에는 처음부터 보물상자 따윈 없지 않았을까?매일 그물을 던졌다 건졌다하는 부지런한 어부가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처음 배를 띄울 때부터 그랬다면 지금쯤 꽤나 멋진 어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017.10.2 아침

삶은 살살 2017.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