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시작은 불볕더위의 절정이었습니다. 아내와 제가 택한 피서지는 어느 숲이었는데요.
바로 황시목 검사님과 한여진 경위님이 기다리는 '비밀의 숲'이었지요.
이 드라마는 대한민국 사회를 반으로 뚝 잘라 그 단면을 '옜다'하고 제 앞에 내밉니다.
경찰 위에 검찰 있고 검찰 위에 정치 있고 정치 위에 재벌 있는, 썩어 문드러진 현실을요.
그런 현실을 뒤엎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수없이 있어왔죠. 대부분 사라졌죠. 아니면 결국은 침묵하거나.
하지만 제 한 몸 돌보지 않고 밝은 곳을 향해 힘겹게 발을 내딛은 분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분들을 의사義士, 열사烈士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황시목 검사가 있습니다.
"왜 보고만 있었습니까! 왜 싸우지 않으셨습니까!"라며 법과 이성을 양손에 들고 싸우는 인물입니다.
한번 웃지도, 울지도 않고 말이죠.
(아래 영상은 너무 스포일러니까 보실 분만)
황시목 검사는 감정이 (거의) 없는 사람입니다.
어릴 적에 뇌수술을 하면서 감정을 느끼는 부위를 (거의) 떼어내야했기 때문입니다.
웃음도 없고 울음도 없는, 좌뇌 우뇌 테스트하면 오로지 좌뇌 좌뇌 앱솔루뜨 좌뇌만 나올 황시목.
가족도 친구도 없이 오로지 좌뇌. 그런 이유로 학교에서 직장에서 외딴 섬처럼 존재하죠.
이방인, 흔한 말로 돌아이. 영어로는 Stranger. (Stranger는 '비밀의숲'의 영어 제목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 좌뇌형 이방인좌뇌형 돌아이이 대한민국 사회를 바꾸어 놓은 겁니다.
저는 이 지점이 흥미로웠어요.
한 집단, 조직, 사회를 바꾸는 존재가 이방인, 혹은 돌아이라는 사실.
우리가 '사회성 부족'이라 낙인 찍고 '유별나게 군다', '자네혹은 좌뇌 왜 그래'라며 무시하고 따돌렸던 존재.
수업 끝나는 종이 치는데 번쩍 손을 들고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했던 눈 맑은 후배가,
회식 때면 홀로 구석에 앉아 오이와 당근만 집어먹다 집에 갔던 곱슬머리 사원이,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고, 회식 문화를 바꾸는 '낯선 구원자'가 될 수 있다는 거죠.
생각해보면 우리는 많은 영화와 소설, 그리고 현실 속에서 낯선 구원자를 만나왔습니다.
'브이포벤테타'의 가면덕후, 브이. 그는 정신분열로 사회에서 격리되었다 탈출한 로맨틱 가이죠.
'홍길동'의 길동이. 아부지를 아부지라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첩의 자식이었죠.
이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가 가진 문제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견뎌냈기에 가장 '절실한' 해결자가 될 수 있었던 겁니다.
이것이 우리가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서 들어야 하는 이유 입니다.
우리를 구할 구원자는 하늘 높은 곳, 무슨 '타워'나 '팰리스'에서 오지 않습니다.
냄새나는 마굿간에서, 제멋대로 자라난 보리수나무 밑에서 오는 법이니까요.
# 어쩌면 웃긴, 비밀의숲 감상
- 이창준 차장검사 나이가 너무 많아보여서 가끔 고개를 갸우뚱.
- 이경영 씨는 전생에 무슨 죄를 졌길래 고조선 이후 모든 악역을 다 하고 계신지.
- 연출은 멋있는데 현실성이 아쉬운 부분들. 피핑탐이 울고갈 엿보기와 엿듣기 무쌍.
2017.8.11. 지치는 금요일.
'책과 음악,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짧은 소크라테스 그리고 긴 질문들 (0) | 2021.08.12 |
---|---|
Iron&wine, 얌전한 덧니 같은 뮤지션 (0) | 2017.08.29 |
전범선과 양반들, 양반 록으로 혁명을 부르짖다 (0) | 2017.06.18 |
조지 해리슨과 제프 린의 그룹, Traveling Wilburys (0) | 2017.06.01 |
아리아나 그란데, One Love Manchester 추모 자선 콘서트 개최 (0) | 2017.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