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속의 산책. A Walk in the Clouds
언젠가 EBS에서 이 영화를 본 적이 있었어요. 수확 시기가 된 포도 농장의 생동감이 뿜어져 나오는 장면이 무척 매력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수확한 포도를 큰 통에 쏟아 부은 후 마을 여자들이 맨발로 춤을 추며 밟는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더라고요.
낮에도 아름답고 밤에도 아름다운 낮아밤아 포도농장
최근에 이 영화를 다시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확실히 보는 맛이 있는 영화에요.
날씨 좋기로 소문난 캘리포니아 지역에 위치한 포도 농장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특히 작은 별, 큰 별, 노랗고 큰 달이 함께 뜬 밤의 포도 농장은 참으로 아름답고 낭만적이죠.
서리가 내린 새벽녘, 나비 날개 모양의 천을 팔에 달고 춤을 추듯 포도밭에 열기를 주는 장면,
밴드의 연주에 맞춰 남자 주인공 폴 서튼(키아누 리브스)이 창문 아래에서 세레나레를 부르는 장면,
포도 수확날의 축제와 같은 들뜬 분위기, 그리고 성대한 와인 파티까지
영화에 흠뻑 빠져 포도 농장에서 함께 일하는 식구이자 직원인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진부하지만 익숙해서 편안한 사람들
영화 속의 캐릭터들은 전형적이지만 그렇기에 부담없이 편안하고 따뜻합니다.
스스로의 생을 개척하려는 의지가 강한 여주인공 빅토리아.
갑자기 나타난 손녀딸의 남편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고 술도 아끼지 않는(?) 귀여운 할아버지.
모두가 어려워하는 남편을 철부지 아들 대하듯 사랑을 베푸는 어머니.
그리고 고아로 태어나 2차 대전에 참전한 전쟁 영웅으로 직장 빼곤 모든 걸 갖춘 와이프도 갖춘 남주인공 폴 서튼.
KBS 주말연속극을 방불케 하는 라인업입니다.
악역(?)을 자처한 알베르또도 그렇죠.
매일 가족만을 위해 중노동에 시달리다 대화할 시간을 뺏기고 그러다 대화하는 법마저 잃어버린 채
고집만 부여잡고 하는, 우리 시대의 아버지를 생각나게 합니다.
사실 예전에 보았을 때는 못된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저 또한 30대 후반이 되어 보니 그저 불쌍한 아저씨 같았어요.
어쨌든 슬픈 이야기는 뒤로 하고 가족들이 진심으로 서로를 아끼려는 모습은 가슴 한 켠을 훈훈하게 달구는 맛이 있습니다.
알베르또를 변화시킨 힘은 바로 그거겠죠. 물론 하루아침에 사람이 그렇게 바뀔 수 있다는 건 믿지 않는 저입니다.
박제하고 싶은 예전 것들
지금의 포도 농장은 아마 영화 속의 손이 많이 가는 모습은 아니겠죠.
포도 송이를 큰 통에 넣고 씻지도 않은 채 발로 밟는 모습은 아마 위생관리법에 걸릴지도 모르고요.
심지어는 긴 머리를 휘날리며 헤드뱅잉도 하니까요.
어쩌면 이 영화는 추억 속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박제해 둔 건 아닌가 싶어요.
추억으로 만들고 추억하는 마음으로 다시 보는 그런 영화 말이죠.
불현듯 꺼내본 어린 시절의 앨범에서 발견한, 세월에 달라진 내 모습과 생각들 덕분에 다르게 읽히고 마는 그런 예전 사진 같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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