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냉장고에 간 돼지고기가 있어 동그랑땡을 만들었습니다.
내공의 부족으로 '검색형 요리사'인 저는 인터넷을 통해 유명 블로거의 레시피를 참고했죠.
돼지고기에 맛술 조금, 간장 조금, 소금 소금, 후추 조금을 넣고 재우는 사이
애호박, 가지, 파프리카, 당근, 파를 다진후 이 모두를 달걀 1개와 밀가루 2스푼을 섞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쳐대도 원하는 만큼의 끈기가 생기지 않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반죽을 고이고이 모셔가며 밀가루에 묻히고
달걀물에 살짝 담갔다가... 으어어... 모양이 무너져라고 외치며(실제로 그것이 일어났습니다.)
후라이팬에 급하게 옮겨 모양을 잡아가며 구웠습니다.
반죽은 총 10개 정도를 만들었는데 4개 가량을 구웠을 때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밀가루 밭을 구르며 조금씩 모양새가 무너진 반죽이 달걀물에 몸을 담그자 풀어지고 말더라고요.
남은 반죽 6개를 일단 그릇에 다시 합치고 쇼파에 누워
밀가루를 더 넣어야 하나 생각하는 동안 외출을 마친 아내가 돌아왔습니다.
뭉쳐지지 않는 반죽의 가벼움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자 아내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반죽할 때 밀가루랑 달걀 넣었으니까 그냥 구워버려. 다시 밀가루 묻히고 달걀 묻히고 하지 말고."
아내의 말대로 더 이상 무엇을 더하지 않고 그대로 구우니 그럴듯한 모양새가 되더군요.
저는 무엇을 더 넣어야 하나 고민했는데 아내는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생각했던 셈이죠.
세상의 어떤 문제는 무엇을 버림으로써 해결된다는 걸 아내를 통해 배웠습니다.
이야기가 갑자기 거창해지지만 지금 시대의 경영자에게도 필요한 자세입니다.
알리바바의 회장 마윈은 누구나 일생에 걸쳐 가져야 할 고민 중 하나로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꼽은 바 있습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또한 과감한 단순함을 추구했죠.
이를 테면 동시에 여러 제품을 광고하지 않고 분기별 목표를 단 하나로 두고 이에 집중했습니다.
뭐 굳이 바쁘신 분, 돌아가신 분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선택과 집중'의 중요성에 관한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어왔죠.
그 또한 무엇을 택하느냐에 관한 것일수도 있지만 다른 쪽에서 보면 무엇을 버리느냐의 문제입니다.
거창하게 이야기를 키워버려서 마무리가 안 되네요.
근데 한 가지 고백할 것은 아내는 엉망으로 반죽된 것을 더 맛있어 했습니다.
끈기없는 반죽을 구운 데다 시간이 흘러 식은 동그랑땡이
갓 구워낸 따끈한 동그랑땡보다 반응이 좋았던 건 어떤 이유일지 다시금 고민해봐야겠습니다.
2017.6.17.토
올해 처음으로 선풍기를 꺼낸 이틀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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