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살살

한 생명과 인연을 맺는 건 무서운 일-

정계피 2017. 4. 8. 22:32

'여기 차로 갈 수 있는 곳이야?'


유기견보호소에서 전화로 알려준 길을 따라 차를 몰자

중형차 한 대를 올려놓으면 정확히 가려질 것 같은 작은 다리가 나왔다.

아슬아슬 다리를 지나자 이어지는 울퉁불퉁하고 경사진 흙길.

덕분에 차 밑에서 드르륵드르륵 긁히는 소리가 났다.  

차를 돌릴 수도 없는 좁은 길. 표정만 잔뜩 일그러뜨렸다.


집에 쌓아둔 신문지 몇 박스를 유기견보호소에 가져가는 길이 이렇게 험난할 줄이야.

이쯤인가, 이쯤인가 하며 얼마간 언덕을 오르자 보호소가 나왔다.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건네는 보호소 직원과 함께 신문지 박스를 나눠 들고 대문을 밀고 들어갔다.


'왈왈'

'컹컹'

'월월'

'바우와우'


머리 속에 그려봤던 보호소보다 몇 배는 더 안 좋은 환경이었다.


작은 개들은 수십마리가 함께 한 공간에 뒤섞여 목이 터져라 짖어대고

큰 개들은 비좁은 우리 안에서 의욕을 상실한 듯 보였다.


시골 언덕에 위치한 오래된 보호소는 군데군데 낡아있었고

무엇보다 익숙해지지 않는 냄새가 코를 지나 머리 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주인에게서 버려진 개들, 길을 잃은 개들, 헤매다 흘러들어온 개들은 이렇게 살고 있었다.

이상한 비현실감 속에 소장님의 안내를 따라 한 바퀴를 빙 둘러보고 서둘러 빠져나왔다.


차는 또 한 번 좁은 시골길을 아슬아슬 지나고 있었다.


*

몇 주가 지난 지금에야 마음을 추스리고 글을 씁니다.


반려동물 천만 시대, '고양이 나만 없어'라는 말이 유행하는 요즘이지만 

여전히 버려지고 남겨진 동물들은 너무도 비참하게 살고 있습니다.


반려동물과 함께 하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유기견, 유기묘 보호소에 가보았으면 좋겠어요,

한 생명과 인연을 맺는 것이 얼마나 무겁고 무서운 일인지 알았으면 합니다.


오늘도 제 고양이 덕분에 저의 세상이 조금씩 깨어지며 넓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2017.4.21.

'삶은 살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다가 보이는 절, 향일암  (0) 2017.05.03
미래를 사랑하는 법  (0) 2017.04.23
Stay Hungry  (0) 2015.05.28
Ripple [나이키 광고]  (0) 2015.04.09
주말 그리고 프리타타  (0) 2015.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