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살살

며칠 아팠던 우리집 냥이 이야기

정계피 2014. 6. 27. 16:08

아마 그 때쯤이었나보다. 대한민국과 알제리 경기가 펼쳐지기 4시간 전

2살 생일을 3일 앞둔 녀석이 처음으로 헤어볼을 토해냈다.


"어디서 목탁 소리 나지 않아?"


아내의 말에 소리가 나는 곳에 가보니, 녀석은 까만 털뭉치를 토해내고 있었다.

토하는 모습이 안쓰럽긴 했지만, 처음 뱉어낸 털뭉치가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호기심은 걱정으로 바뀌었다.

밤새 녀석은 목탁 소리와 함께 연달아 구토를 했기 때문이다.

위액처럼 보이는 하지만 냄새는 나지 않는 액체를 토하기도 하고, 

나중에는 토할 것도 없는지 하얀 거품이 섞인 투명한 액체를 거실 곳곳에 남겨두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구석진 곳에 틀어박혀 추욱 늘어져 눈만 말똥말똥- 


대한민국 축구는 보는 둥 마는 둥하고,

아침이 되자마자 회사에는 반차를 쓰고 동물병원으로-

병원 싫다고 발버둥치다 내 팔에 무수히 상처를 내며 주사 2방을 맞고는 집에 와서 다시 추욱 ㅠ


구토는 여전했고, 역시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다음날에는 와이프가 병원으로- 

결국 마취하고 엑스레이에 피검사에 하루 종일 수액을 맞혀야 했다.

검사 결과는 이상 무, 모든 게 정상이란다. ㅠ


그리고 브라질 월드컵, 대한민국과 벨기에 경기가 있던 오늘 새벽.

내내 기운 없던 녀석이 새벽에 일어난 내 앞으로 와 앞다리를 길게 뻗어 기지개를 켜고는 

내 발등에 머리를 들이밀며 만져달라는 시늉을 한다.


드디어 안심. 

며칠간 아무것도 먹지 않는 녀석이 걱정돼 손가락에 미지근한 물을 적셔 몇 번을 입가에 가져가자 할짝할짝 핥더니,

사료도 한 알 살짝 맛을 보기 시작했다. 며칠만에 듣는 아그작, 녀석의 입 안에서 사료가 부서지는 경쾌한 소리-


"아~ 됐으요 ㅠ-ㅠ"


대한민국 축구는 결국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월드컵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아무것도 보여준 것 없는 대표팀을 보며 축구 팬들은 악몽을 꾼 듯 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랬다. 우리집 2살배기 냥이가 아팠던 며칠은 더할 수 없는 악몽이었고, 

다시 기운을 차린 녀석을 만난 오늘은 나에게 16강이고, 8강이고, 4강이었다. 


녀석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주문처럼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같이 있자고 몇번이나 되뇌이고 출근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