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살살

홈플러스에서 재래 시장이 떠오르더라

정계피 2009. 8. 23. 01:00

여자친구 센세(일본분이시라)가 다음주 월요일에 생신이란다.
선물로 와플팬을 산다고 하길래 홈플러스로 따라나섰다.
여자친구네에서 홈플러스까지는 버스로는 20분 정도인데, 
홈플러스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또 한 번 버스를 타야하는 불편함이 있다.
게다가 잘 오는 버스도 아니라 그 시간을 모두 모아보면 아마 한 시간 정도가 될 것이다.

여자친구와 나의 왔다리갔다리 버스비에(마을버스라 치면 총 2,400원)
버스 타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그렇게 쉽게 찾아가게 되는 곳은 아니다. 

게다가 요즘 기업형 슈퍼마켓에 대한 고민도 들고,
언소주에서 펼치고 있는 삼성제품 불매 운동 소식도 얼핏은 알고 있기에,
사실 가는 길이 그리 편한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 데가 마땅찮다는 이유로 유난히 센 버스의 에어컨을 견디며 홈플러스로.. 

 

주말 저녁이라 그런지 아이들을 끌고 나온 가족들도 정말 많았는데, 
그 아이들을 보면서 슬쩍 우울한 기분이 들더라. 

나 어릴 적만 해도 주말 아침이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재래시장에 갔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지금도 재래시장에 대한 향수랄까? 그리움 같은 게 있는 편이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 시식대에서 나온 햄 조각을 저렇게도 맛있게 먹고 있는 아이들은 
대형마트에 대한 경험만 가지게 될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것도 "맛있다" 라는 가장 강렬한 기억과 함께 말이다.  

엄청난 자본을 등에 업고 무료 시식에, 파격 세일에, 물량 공세에, 친절 서비스까지 
대형마트의 경쟁력이란 실로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 숨은 자본이 가지는 속성은 어떨까? 
그 자본은 우리의 건강을, 자녀의 안전을, 후덕한 인심을, 따뜻한 정을 조금씩 앗아가고 있지는 않나- 

소비자들이 점점 더 현명해져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일기 중에 "봉건시대는 농민은 무식하고 소수의 왕과 귀족 그리고 관료 만이 
지식을 가지고 국가 운영을 담당했다..... 21세기 들어 전 국민이 지식을 갖게 되자 직접적으로 국정에 참가하지 시작하고 
있다. 2008년 촛불시위가 그 예이다." 라는 말을 보았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소비' 만큼은 그 반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예전에는 우리 스스로가 '결정권'을 가지고 우리가 먹을 것을 생산을 하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교환을 했지만, 
지금 우리는 대형마트가 선택해놓은 물건들 중에서 다시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도 우리 자신이 피땀 흘려 거름 주고 밤낮으로 잘 있나 안부 물어가며 키운 것이 아니라 

포장지에 적힌 몇 줄의 글귀를 보고 상품의 생산 과정을 아주 부정확하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요즘 들어 강하게 드는 생각이 있다.

"무엇을 먹느냐가 우리의 몸을 만들듯이,

자본주의 속의 우리에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무엇을 사느냐" 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홈플러스에서 먹은 떡볶이가 배에서 나뒹군다. 화장실을 다녀와야겠다.

* 신종 플루 때문인지 카트 손잡이를 소독해서 주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