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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며] 꿈나라 학원이 있나요?

우리집에는 28개월 아이가 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놀라움의 연속인데, 가장 큰 놀라움은 육아가 이렇게 힘들다는 것에 대해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 알려줬었는데 내가 귀기울여 듣지 않았던건가. 혹시 이 글을 보는 예비 아빠엄마가 있다면 귀담아 들으시길. 육아는 힘듭니다. 무척요. 또 다른 놀라움은 아이는 무척이나 빨리 자란다는 것이다. 꿈나라에서 학원이라도 다녀 오는 건지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말을 하고 어제는 분명 오르지 못했던 곳을 혼자 힘으로 오른다. 이런 아이의 폭풍 성장을 보는 일은 무척이나 기쁘지만 동시에 아쉽기도 하다.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든 해보려다가 엉뚱한 표현을 한다던가 그리 높지 않은 의자에 오르기 위해 낑낑대다가 결국 내려와 부모에게 팔을 벌리는 귀여운 모..

삶은 살살 2021.08.17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짧은 소크라테스 그리고 긴 질문들

나의 책장 한 켠에는 꽤 오래된 소크라테스 책이 있다. 너두? 나두!!! 학창 시절 몇 번 읽기를 시도했다가 페이지는 넘어가는데 뭔가 이해는 되지 않아 다시 책장에 꽂히기 일쑤였다. 그 뒤 가끔 책장을 둘러보다 '소크라테스'라고 진지한 궁서체로 쓰인 책등을 마주할 때면 "아 소크라테스! 조만간 봐야지"하며 읽기 희망 목록에 넣어두곤 했다. 그러다가 얼마 안 있어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 나오거나 급히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소크라테스 위로 껴들곤 한다. 그렇게 읽기 희망 목록에는 언제나 있지만 뒷순서인 존재, 소크라테스를 이번에야 읽게 되었다. 책장의 소크라테스를 드디어 꺼냈느냐고? 아쉽게도 그건 아니고, 에릭 와이너가 쓴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라는 신간을 통해서다. 이 책은 여러 유명 철학자를 다루는데..

[가게에서] 어르신의 서명

카운터에서 계산을 받다 보면 서명도 참 여러가지구나 싶다. 특이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서명은 하트그리기다. '하트', 그럴 때면 나는 속으로 식사가 영 형편없진 않았나보다 안심한다. 맛없는 식사를 하고 하트를 남기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웃는 이모티콘을 그리거나 '네'라고 대답하듯 서명을 남기는 예의바른(?) 손님들도 계시다. 나도 목소리를 높여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하게 된다. 어느 분은 작대기 하나만 쓱하고 그린다. 그런 손님은 여지없이 영수증도 필요없다 하시고 홀연히 사라지신다. 때로는 서명의 내용이 아니라 서명하는 자세나 태도가 남다른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카운터 쪽으로 걸어오는 어르신은 족히 아흔은 돼 보이셨다. 이 나이대의 손님이 계산을 하는 일은 드물기에 어르신..

삶은 살살 2021.06.12

[아내가 임신했다] 8주차 - 입덧의 덫

먹덧으로 시작할 것처럼 보였던 아내의 입덧은 8주차에 접어 들면서 입덧 다운(?) 입덧으로 바뀌고 있다.울렁거리는 속을 참아내며 애써 먹을 수 있는 만큼은 먹으려는 아내의 모습이 안쓰럽다.그렇게 힘들게 먹은 음식을 이내 토해낼 때는 더욱 그렇고-그저 지켜보는 것, 가만히 등을 쓸어주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것도 마음 아픈 일이다. 한 번씩 구토를 하게 되니 밥 먹는 게 무서워지기도 하고. 그래도 어쩌겠나.먹는 순간만이라도 맛있게 먹었으면 하는 마음이다.케첩만 넣고 해도 될 소세지야채볶음에 난생 처음 데미그라스 소스까지 만들어가며(백종원 쉪, 감사합니다) 유난을 떠는 건 그런 바람 때문. - 며칠새 출퇴근길에 (저 유명한) 을 읽어 냈다.모리 교수님은 말했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하리"라고.아무리 ..

삶은 살살 2018.10.06

[아내가 임신했다] 어리둥절한 6주차

결혼 6년차, 아내가 임신을 했다.무던히 가지려고 애를 썼던 적이 있었고 문턱에서 아픔을 겪기도 했고 인공의 힘을 빌리기도 했다.별소용은 없었지만 '아이는 하늘이 내려준다'라는 말을 어렴풋이 깨닫는 과정이었다.그리고 아내의 임신 소식. 하늘이 별안간 마음을 썼나보다. 6주차에서 7주차로 넘어가는 중.아내는 잠이 많아졌고 울렁거림이 심해 아무것도 먹고 싶어하지 않지만 꾸역꾸역 먹을 수 있는만큼은 삼키고 있다.말 그대로 손톱 크기일 아이는 아내의 몸 속에서 제 몸의 반이나 되는 심장을 끌어안고 온몸으로 세차게 두근대고 있다.아직 어리둥절한 나는 힘닿는대로 집안일을 하고 요리를 하고 책을 보고 셋의 앞날을 생각해본다. 아내의 울렁거림이 심하고 가슴에서는 통증을 느낀다. 의사 선생님은 그게 임신 초기의 자연스런..

삶은 살살 2018.09.24

The end of the road

태양의 나이가 50억년쯤 남았다고 한다. 낮에는 똑바로 쳐다보기도 힘든 이 찬란한 행성은 소멸 과정도 꽤나 호들갑이셔서- 주변에 행성들을 집어삼킨다고 하고, 불행하게도(아마?) 지구도 그 목록에 포함돼 있다고 한다. 지구가 과연 멸망할까라는 오래된 물음에 한 가지 답은 나온 셈이다. 물론 인류가 멸망할 이유를 묻는다면 다시 고민해봐야겠지만-

삶은 살살 2018.09.01

씌나몬 근저당권 말소기

1천400조원, 현재 대한민국 가계부채 전체 규모입니다. 우리나라 한 해 예산이 400조니까 우리나라의 가정이 모두 빚을 갚으면 그 돈으로 3년 정도는 나라를 꾸려갈 수 있는거죠. 그리고 2016년 국내총생산GDP이 약 1,589조 정도라고 하니 비유하자면 우리는 1년 정도를 가불해 살고 있는 셈입니다.(계산이 틀렸다면 문과인 저를 탓하세요..) 어쨌든 저 또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부채, '가계부채'를 만드는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부채는 이렇게 큰데 가슴 속이 시원하기는 커녕 답답한 건 왜일까요. 헛소리는 이쯤하고 본론으로 넘어갈게요. 대출을 받게 되면 '근저당권'이라는 걸 설정하게 됩니다.(그렇대요. 저도 돈 갚으면서 제대로 알았어요.) 근저당권을 쉽게 말하면 A(주로 은행이나 보험사)한..

삶은 살살 2017.10.22

<며느라기> @멀티플렉스 추석

추석 연휴를 바로 앞둔 날 전세 계약을 마무리하러 아내와 부동산을 찾았습니다. 중개사분께 반갑게 인사를 드리는데 표정이 안 좋으시더군요. 붉은 눈시울에 한 손엔 휴지를 들고 계신 모습이 방금까지 울고 계셨던 거 같더라고요. 매번 뵐 때마다 밝고 활기찬 분이었기에 살짝 놀란 마음이 생기며 무슨 일이 있으신가 자연스레 걱정이 됐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금 나누다 혹시 무슨 일 있으신건지 여쭤보니 중개사분께서 조심스레 하소연을 하시더라고요. 그 사연은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긴 스트레스였습니다. 시어머니가 아들만 셋인데 다른 아들네 며느리들은 바쁘다며 음식 준비를 하지 않아서 그동안 혼자서 해오셨다고 합니다. 그게 억울하지만 마음이 약해서 누구한테도 말 못하고 속만 썩이고 계신 거였죠. 제 아내는..

삶은 살살 2017.10.19

알맞은 힘으로 알맞게 일하기

4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고양이가 동거 중인 저희 집. 저는 꽤나 아침형 인간인 탓에 가장 이른 아침을 맞이하는 편입니다.서재로 가 책을 보거나 인터넷을 하기도 하고 이렇게 글을 쓰기도 합니다. 그리고 배경으로 스포츠 채널을 낮은 볼륨으로 틀어놓는 걸 좋아합니다. 치열한 승부의 현장을 고요히 보며 몽롱한 정신을 조심스레 깨우는 의식이랄까요? 요즘은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포스트시즌 경기가 한창입니다. 야구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고 딱히 응원하는 팀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투수가 공을 던지는 투구 동작은 유심히 보는 편입니다. 지름 7cm 가량의 작은 공을 조금이라도 위력적으로 던지기 위해 한껏 몸을 구부렸다 일순간에 펼쳐내며 타자를 향해 공을 뿌리는, 일련의 투구 동작에는 가슴을 뛰게 하는 무언..

삶은 살살 2017.10.14

청주 운보의집, 좋았기에 더욱 아쉬운

길었던 추석 연휴의 마무리는 평소와 조금 달랐습니다. 남쪽 바닷가인 고향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난생 처음인 어느 곳을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을 하늘이 아주 적당해서 아마 도로 위의 많은 귀경객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평소였다면 그냥 생각만으로 끝났겠지만 이틀하고도 반나절이나 남은 연휴가 저와 아내를 움직였습니다. 조금씩 답답해져가는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도착한 곳은 청주였습니다. 아내는 난생 처음이었고 저는 대학교 시절 학회 MT로 청주에 사는 후배집에 놀러 갔던, 얼마 남지 않은 기억을 꺼내 아내와 나눴습니다. 남청주 톨게이트 근처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하며 어디를 갈까 스마트폰의 화면을 뒤적여보았습니다. 상당산성, 국립청주박물관 그리고 운보의집. 1박을 하며 3곳 정..